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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제/제20회 제주여성영화제

[2주에 한 번, 제주여성] 제주여성영화제 스무살, “변함없이 변화하다”

by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영화제 2019. 6. 10.

제주여민회 기관지 [제주여성] 기획 콘텐츠

 

[2주에 한 번, 제주여성] - 기획
제주여성영화제 스무살, “변함없이 변화하다”
윤홍경숙/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가 만들어진 계기 및 성과 
제주여성영화제는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주의 극장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영화, 
특히 여성영화를 찾기란 그림의 떡 이었습니다. 
1999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저를 포함한 몇 사람은 서울에 가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맘껏 봤습니다. 
영화를 통해 저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그녀들의 삶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동질감에 놀랐으며, 
세대를 넘어선 여성연대에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여성주의 물결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제주여성영화제 제1회 포스터

여성영화는 영화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럼 제주에서도 여성영화를 볼 수 있어야지요. 
아무도 안하면 우리가 하면 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고, 
우리가 느꼈던 생생한 영감들을 나누고, 
함께하고 싶어 영화제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주여성영화제는 참신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갈증을 해소해 줬습니다. 
여성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성주의 문화감수성과 성평등 문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통로로써 문화다양성을 높이는 역할도 했다고 자부합니다. 
여성감독들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성주의 문화 생산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주여성영화가 만들어낸 자그마한 성과입니다.

몇 가지 기억. 
초창기엔 여성주간에 맞춰 7월 첫째 주에 진행하다보니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상영공간에 비가 새서 양동이에 비를 받으며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전용극장이 아니라서 움직일 때마다 의자는 삐걱거렸고, 
영화를 보기 위해 고개를 쳐드느라 고개가 아팠으며, 화질이 안 좋은 건 감내해야 했습니다. 


상영공간에서 안정적으로 영화를 상영한지도 몇 년 안 됩니다. 
여전히 매년마다 상연 공간 확보에 대한 고민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어느 해인가는 나이 지긋한 분이 매일 영화를 보러왔습니다. 
살금살금 왔다가 영화만 보고 조용히 싹 사라지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원고지를 ‘쓰윽’내밀었습니다. 
손 글씨로 쓴 영화감상평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영화를 보러 오는데, 
우린 그 분을 ‘길 위의 철학자’로 부릅니다. 
어쩜 우리는 이런 감동으로 영화제를 이어온 건지도 모릅니다. 

2017년에는 포스터 이미지를 자기식대로 해석한 사람들의 
항의전화와 피켓시위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어떤 이미지를 자기 멋대로 오해하거나, 
대놓고 싫어했습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여성영화제가 맘에 안 들었나 봅니다. 
어쩜 이게 제주여성영화제에 대한 다른‘관심’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애정하는 여성영화들
19년 동안 영화제를 했으니, 
제주여성영화제에서 많은 여성영화들을 상영했습니다. 

 

<팝의 여전사>, 프라티바 파마 감독, 영국, 50분, 다큐, 1998년

그 중 제1회 때 상영된 <팝의 여전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90년대 등장한 여성음악인들, 
일상의 문제와 원하는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페미니즘을 외치는 젊은 음악인들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아녜스 바르다 감독, 프랑스, 82분, 다큐, 2000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제2회 때 상영되었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입니다. 
이 작품은 쓸모없는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과 사람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무분별한 소비와 자본의 횡포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 이길보라 감독, 한국, 80분, 다큐, 2014년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제15회 때 상영된 작품입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로부터 태어난 감독은 
비장애인은 경험할 수 없는 깊고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네스 바르다, JR 감독, 프랑스, 94분, 다큐멘터리 2017년

마지막으로 작년 폐막작이었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골랐습니다.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 곳곳을 누비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평범한 삶에 바치는 찬사와도 같습니다. 
1928년 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아네스 바르다’의 작품입니다.

이외도 좋은 영화가 많습니다. 
제가 봤던 영화들은 새로움이 필요할 때 가뭄의 단비 같았고, 
협소한 틀 안에서 허우적거릴 때 머리를 탁 치는 도끼였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기존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는 
미성숙하거나, 괴물이 되거나, 혐오스럽습니다. 
이는 우리사회에 횡횡하는 여성차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성영화의 힘은 타자의 여성이미지를 전복시킬 수 있으며,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합니다.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생각하는 여성영화는 우선, 
여성감독이 여성주의 관점으로 만든 영화를 말합니다. 
또한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처한 다양한 현실을 그려내는 영화도 포함합니다. 
대안적인 여성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영화도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차별과 폭력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삶을 보여주며 이웃과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는 영화를 의미합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와 위드 유’는 
제19회 제주여성영화제 영화선정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여성을 둘러싼 폭력과 이에 맞선 말하기 그리고 힘차게 내민 연대의 손길들을 
영화로 더욱 활발하게 드러내고, 충분히 이야기되기를 바랐습니다.

 

제주여성영화제 스무살 
돌이켜보니 한해 한해 시간과 이야기가 쌓여 제주여성영화제가 더 풍요로워 진 것 같습니다. 
여성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같습니다. 
아니면 준비하는 사람들의 무게감과 영화를 보러와 준 관객들의 
기대감이 한데 모여 새로운 에너지가 피어난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 발에 땀이 차도록 뛰어다닌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올해 벌써 20주년이 됩니다. 
영화제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준비하는 사람들은 무게감과 긴장감에 한층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처음 시작할 때 그 마음을 기억하고, 곱씹으며, 
영화제를 왜 하고자 했으며, 그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제20회 제주여성영화제는 변함없이 변화하며,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위 원고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여가 in 제주」 Vol.03 
‘제주여성영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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